[스크랩] ● 박정희 대통령 제27주기 추도식

2006. 10. 13. 16:14기타/정보.뉴스


● 박정희의 애국애족이 5.16을 불렀다.

1961년 5월16일 대한민국은 혼란의 위기에 직면해 있던 상황에서
조국을 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가만히 좌시만을 할 수 없다는
우국의 일념으로 박정희와 젊은 군인들이 궐기한 것이 5.16이다.

당시 윤보선, 장면 정부는 무능과 부패의 막바지 절정을 달렸다.
박정희는 빈농 아들인 것에 반해 윤보선은 친일명문 출신이었다.
장면 역시 김구선생 지시로 반민특위가 작성한 친일파 살생부
268인 중에 한명으로 등재된 악질 친일파였다.(박정희 해당없슴)

4.19로 자유당 정부가 무너진 이후 장면 내각이 출범하는데
비참한 민생은 내팽계치고 10번도 더 개각이 이뤄졌었다.
이유는 바로 지금과 같은 코드 인사로 장관 자리 하나씩 해 먹으면
가문의 영광이요,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5.16 혁명의 군인들은 정치적 경륜이 있었던것도 아니었다.
난마와 같이 헝클어지고 부패부정, 무질서, 부조리, 정체 무기력,
이러한 단어들이 그당시 사회의 일면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회악과 부조리를 과감하게 척결하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정치을 흡입하기 위해서도 5.16은 필수적이었다고 본다.

박정희가 5.16 혁명을 일으켜,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5.16으로 인하여 장면, 윤보선을 중심으로 한 진짜 친일파 정권이
무너지게 되고 자유 민주주의가 새롭게 싹트는 계기가 된것이다.

당시 4.19에 참여한 서울대 학생회가 5.16 지지성명을 발표했었다.
장준하 선생께서 5.16혁명은 4.19 정신을 이었다며 칭찬하게 되고
학생, 국민들, 지식인 너나 할 것 없이 5.16을 혁명으로 규정하고,
4.19 정신의 계승이라 만천하에 칭송을 하였던것다.

구국의 결단으로 이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5.16 혁명인 것이다.

그런데 불순한 무리들은 5.16을 폄하하며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정권을 잡았다 하는데 이건 낭설일 뿐이다.

군사정변 5.16 혁명으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대규모 교전도 없었고, 그래서 5.16혁명을 무혈혁명이라고 한다.

무능하고 부패한 민간정부를 전복하고, 구태에 물든 부정부패 인사를
구속하며 쾌도처럼 산적된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혁명정부에 대하여
다수의 국민들은 환영했지만 구 정치세력들의 반발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 이후 혁명공약을 내걸어 모두 완수하고, 민정이양을 거쳐 직접선거,
즉 국민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을 뽑았던 것이다.

당시 서민이었던 박정희와, 친일가문의 후예인 윤보선과의 경합을
벌였는데 막상막하 간발의 차이로 박정희가 당선되게 되었던것이다.

혁명을 단행하고 구 정치인들로부터 정권을 인수한 5.16 혁명정부는
너무나 막중한 민생 정책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굶주린 국민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우선적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하였고
험난한 대외적 외교에 박대통령이 구걸하면서 까지 오직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애국 애족심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 나간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직 조국근대화 과업을 위해 불철주야로 매달렸다.

1,2,3차 5개년 계획이 대체로 순조로이 진행되어 대한민국의 국력도
괄목하리 만큼 크게 신장되었고 공업화도 착착 추진되어 5.16당시와는
비교하기 어려우리 만큼 나라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외국에서 조차 한국의 기적이니, 한강이 기적이니 하고 우리가 걸어온
결과에 대하여 찬사를 보내고 새마을운동을 배우려 지금도 한국에 온다.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새마을운동과 1972년 가을에 단행된 10월 유신은
우리의 과업을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 절대적인 영향력이 되었던것이다.
유신정권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것은 누구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칭 민주화 투사들은 말하기를,"70년대에 유신헌법은 유신독재"라고
비난하고 있다.이거 또한 거짓된 민중선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유신헌법 체제 동의는 전 국민의 70% 이상이 찬성 하였던것이다.
우리는 유신체제로 인해 더욱더 중화학, 중공업 등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진국 진입이라는 희망을 낳게 되었것이 아니였던가.

대한민국은 80년대가 가장 호황기였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이런 결과는 박대통령의 유신헌법 개정통과로 인한 경제개발 덕이었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민족적 긍지와 자주정신, 그리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들이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욱 고조되어 가고 있었으며
우리 스스로의 피땀으로 이룩한 성과에 보람과 자랑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군인이였다는 단순한 이유하나로 박정희의 5.16 혁명을 쿠테타로
몰아 세우면서 그를 폠훼하여 정권을 잡아 보겠다는 현실의 정치꾼들로
인해 역사가 변질되고 사후 지금까지도 정치적 이용을 하고 있는것이다.

편협된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아서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현실에 볼때 6.25한국전쟁을 북측의 남침을 반대로 북침이라 교육시키고,
민주화라는 허울로 대한민국을 좌경화하려는 불순세력들을 많이 보고있다.
이러한 국가적 혁명을 정치세력과 운동권들에 의해 쿠테타로 변질되었다.

쿠데타가 아니라 분명 나라를 구하고 국민을 생각했던 혁명인것이다.
박정희의 5.16은 군사쿠테타가 아니라, 명백한 국가적인 혁명이다.

자칭 민주화 세력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정치목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다시는 이나라가 좌경화되는 것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된다.
지금 바르게 못잡으면 영원히 대한민국은 존재할수가 없다.

국민들을 편협된 역사관속에서 해방시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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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박근혜(대박사랑)
글쓴이 : 대박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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